[천자칼럼] 에티오피아 커피

입력 2016-05-26 17:40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인 카파에서 양을 치던 소년 칼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양들이 갑자기 날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붉은 열매를 따먹은 양들이 흥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아닌가. 그도 궁금해서 맛을 봤더니 상큼한 단맛이 났다. 곧 기분이 좋아지면서 가슴이 뛰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는 마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달려가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렸다.

6세기 무렵 에티오피아의 카파에서 우연히 발견됐다는 커피의 기원설이다. 당시 소년의 얘기를 들은 수도사들은 이 열매에 잠을 쫓는 각성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밤새 기도하며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했던 이들에게는 ‘신의 선물’로 여겨졌다. 이후 커피는 이슬람의 확장과 함께 터키 등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술을 못 마시는 무슬림으로선 커피 속의 최음제 성분에 주목하기도 했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예멘이다. 예멘에서 수확한 아라비아 커피와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온 아프리카 커피는 이슬람 성지 메카의 해상관문인 모카항에 모여 유럽 각국으로 수출됐다. 이 과정에서 유럽 사람들은 두 커피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모카라 불렀고, 모ゴ?커피의 대명사가 됐다. 커피 이름에 ‘예멘 모카’‘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등 국가나 항구, 지명이 들어가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커피는 여러 문화권으로 전파되면서 다양한 맛과 향으로 거듭났다.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고온에서 급속하게 뽑아낸 커피로 ‘빠르다’는 말에서 나왔다. 여기에 우유를 섞은 것이 이탈리아의 카페라테, 프랑스의 카페오레다. 카푸치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카푸친파 소속 사제의 복장 색깔에서 유래했다. 원두를 갈아 여과지에 넣고 물을 부어 내려 마시는 드립커피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다.

가장 흔한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으로 2차대전 때 미군이 배급받은 커피를 최대한 많이 마시기 위해 물을 탄 데서 비롯됐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한 커피하우스에서 이를 모의했는데 이를 계기로 차는 영국 식민지배의 상징, 커피는 독립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세계로 뻗어가던 모카항은 19세기 이후 쇠락하고, 아라비아 커피의 명성도 중남미에 밀려 옛날같지 않다. 그러나 커피의 본향인 에티오피아에서는 관련 산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가난의 유산이던 수작업 농법 덕분에 ‘유기농 커피’의 부가가치가 부쩍 커졌다니 더욱 흥미롭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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